사사로운 의리를 앞세우던 이들은 정쟁에 휩쓸리고 간혹 시대를 열었다
  • 김병수 전 제주시청 문화도시센터장
  • 승인 2022.09.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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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문=김병수의 제주도사나] 화북공단 검사소에 흰둥이를 맡겨 두고 근처 밥집에 들었다.

찬으로 포근한 계란찜이 나오자 곧 마음이 밝아진다. 제주의 공단은 소음이나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89년 전주 팔복공단에 파업 중이던 썬전자를 찾을 때면 버스 타고 졸면서 가다가도 매케한 냄새에 깨곤 했다.

돈은 없었지만 공장 가까이 브로크 벽돌로 대충 지어 올린 집들 사이로 점포 몇이 있었고,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계란찜에 침을 꼴깍 하긴 했지.

열정을 기억하는 것이,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를 알 수 없게된 지금에 와선 무소용다.

제자 자공(子貢)이 ‘관중은 어진 사람이 아니다’고 했을 때, 정작 공자는 환공을 도와 백성이 혜택을 입게 한 관중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지를 말한다.

 

공자는 ‘공적인 것과 사사로운 것’의 이치를 따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이고, 군군신신(君君臣臣)을 예사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 이한우는 형세를 이해한 이방원을 중(中)의 입장에서, 위험에 우유부단했던 이성계의 정(正)이 갖는 도리없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는 저자가 왕권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中을 염두에 뒀던 것이고, 전에 쓴 ‘조선의 숨은왕’에서 송익필의 직(直)을 환원론적 세계관에 빠져 교조화된 주자학과도 대비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사사로운 의리를 앞세우던 이들은 정쟁에 휩쓸리고, 간혹 시대를 열었다 해도 스스로 훈구파가 되거나 그에 휩쓸린 채 공과 사를 잃고 교조주의의 긴 터널로 가게 된다는 점에서, 전의 일이란 오늘의 일과 다를 게 없다.

그래도 공단과 공단 밥집에 들어서면 날마다 나는 청년기의 어느날이 떠오르고, 정처 없이 걷게만 된다. 나도 세상도 낡아 가면 곧 무엇이 될까. (22.09.29)

 

* 글 • 사진 : 김병수 전 제주시청 문화도시센터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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